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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총수 처벌'이 '뇌물구태 단절' 大義보다 중요한가 - 전지현 변호사 기고

  • 관리자
  • 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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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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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지현 변호사, 전 민주평통 인권법제위원회 상임위원
정치권력자의 뇌물요구 惡習, '준법감시제'로 원천차단해야



사진=시장경제신문DB



전지현 변호사(법무법인 참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6년 말 불거진 국정농단 사건으로 피고인 신분이 됐다. 17년 초, 국가 최고 권력자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그는 올해로 4년째 재판을 받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검은 이 부회장 뇌물 등 혐의 사건의 본질을 ‘정경유착’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을 청산해야 할 대표적 적폐 중 하나로 꼽았다. 재판 결과는 세간의 관심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를 떠나 진영 대결의 한 축으로 작용했던 점도 사실이다.

사건 발단은 지난해 10월 있은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1차 공판이다. 이 사건 항소심은 문제된 마필 3마리 소유권이 최순실 모녀에게 이전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이 부분 뇌물성을 부인했다. 제3자 뇌물죄의 필요적 구성요건인 ‘부정한 청탁’이 부정되면서 동계영재스포츠센터 후원금 16억여원도 뇌물에서 빠졌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이 뇌물에서 제외한 마필 3마리 소유권 및 동계영재센터 후원금을 모두 뇌물로 판단했다. 그 결과 뇌물액수는 86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이 사건 주심을 맡은 조희대 대법관 등 3인이 반대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상고심 다수의견은 박영수 특검이 주장한 ‘묵시적이면서도 포괄적인 부정한 청탁의 존재’를 인정했다. 대법 전원합의체가 뇌물 액수를 크게 늘린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서, 서울고법의 파기심 공판은 양형심리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국내 최고 기업 총수의 신병 처리 여부가 쟁점이 되면서, 모두가 숨을 죽이고 공판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재판부의 태도를 놓고 말들이 많다.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상 기업 준법감시제도를 언급하면서, 파기심 양형에 반영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기업 준법감시제도 정립’이라는 숙제를 안게 됐지만 호재를 만난 것은 분명하다. 뇌물액수가 늘어나 실형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재판부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집행유예도 가능하기 때문에, 재판부의 태도는 민감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예상대로 진보진영은 반박에 나섰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범여권’ 국회의원 및 노동·시민단체들 주장의 요지는, 사법부의 ‘양형거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재판부가 이 부회장 책임 경감을 위해 미국 양형기준을 사후 약방문처럼 무리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 기소를 지휘했던 박영수 특검은 첫 공판에서 ‘고질적이고 전형적인 정경유착’, ‘국민소득 3만불 시대’, ‘시대적 경제성장’, ‘선진국 진입’과 같은, 출마 선언 기자회견장인지 법정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발언을 쏟아냈다. 특검은 재판부의 준법감시제도 언급 이후에는 재판의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해당 부장판사를 기피하고 나섰다. 근거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검찰 수사 자료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과 뇌물공여의 적극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단에 반하는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라는데,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 부회장을 감경해 줄 것 같으니 재판부를 바꿔 달라’는 것이다.

일단 진보진영의 반박은 전형적인 ‘갈라치기’ 프레임 설정이다.

일반 형사사건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의 재범가능성이나 반성 여부를 양형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이 점을 전제로 사건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처음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박영수 특검은 뭐라고 했는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질적이고 전형적인 정경유착’이라 했다. 재판부가 정경유착 단절과 준법경영 도모를 위해 제도 개선을 권고한 것은, 피고인의 '재범 방지'에 목적이 있다. 이를 양형사유로 삼는 것은 법관의 재량이다.

‘양형거래’라는 것은 처음부터 이 부회장에 대한 집행유예를 목적으로, 변호인단과 밀실 거래를 했을 때 성립한다. 그런데 ‘밀실 거래’라는 게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는 일이던가. ‘안 봐도 뻔하지’ 하는 막연한 의심으로, ‘재벌 봐주기’ 등의 용어를 앞세워 몰아붙이는 건 선동에 불과하다. 차라리 “우리는 정경유착 근절 같은 대의보다는 기업총수 구속이 시원해서 좋다”고 고백을 하면 어떻겠나.

4년 전 특검이 이 사건을 맡게 되면서 뇌물성이 드러났고 관련자들은 줄줄이 구속됐다. 분노한 국민들은 특검에 박수를 보냈고, 이후 나라 전체가 적폐를 청산하는 데 몰두했다. 박영수 특검이 법률가를 떠나 사명감 내지 일종의 공명심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첫 공판기일에 나온 그의 법정 발언은 정치인에 가까웠고, 최근 제기한 파기심 재판장 기피신청 사유는 억지에 불과하다.

얼마 전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는 각 계열사 내부 감시조직과 함께 이중으로, 경영권 승계를 포함한 기업 현안 전반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자체 조사권까지 보유했다. 위원회의 조사 결과 준법 의무 위반이 드러나면 삼성 핵심 계열사에 시정조치를 권고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사실을 위원회 자체 홈페이지에 공개키로 했다. 진행 중인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현상 동결 명령까지 할 수 있다. 위법 사항을 조사하고 이를 막는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제도를 잘만 운영하면, 국가 최고 권력자가 기업에 뇌물을 요구하는 악습을 단절할 수 있다. 미국의 기업문화는, 연방법원이 기업범죄 양형기준 중 하나로 준법감시제도를 채택한 뒤부터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권력자가 기업에 뇌물을 요구하는 악습을 끊고 싶다면, 일이 터지고 나서 ‘어떻게 망신 줄까’를 생각할 게 아니라, 위법행위를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사리에 맞는 행동이다.

몇몇 집단을 적폐로 특정해놓고, 뭐만 나오면 몰아붙이는 태도는 너무 피곤하다. 지금이 ‘중국 문화 대혁명’ 시대는 아니지 않나. 적폐로 낙인찍힌 사람도 국민이다. 일이 벌어진 뒤 엄벌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사전에 그것을 고쳐나가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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