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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와 역사로 주역을 읽다以事讀易] <6> 추미애 법무부 장관. ‘쥐새끼와 같으니 반듯하면 위태롭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 관리자
  • 2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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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노무현 탄핵 후 낙선 악몽은 추미애 장관의 명운을 읽는 코드
⊙ 젊어서는 비교적 바른길을 걸었던 김안로, 귀양 갔다가 권좌에 복귀한 후 權奸의 길을 걷다가 비명횡사
⊙ 수 양제의 뜻에 영합하면서 귀를 막았던 우세기, 결국 수 양제와 함께 죽임을 당해
⊙ 도리가 아닌 것[非道]으로 명이괘 九三에 있는 윤석열 총장을 누르려 할 경우 그 도리의 어긋남이 너무 크게 돼 서울시장 등의 꿈을 접게 되는 상황 올 수도

이한우
1961년생.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철학과 석사,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박사 과정 수료 / 前 《조선일보》 문화부장, 단국대 인문아카데미 주임교수 역임
  추미애(秋美愛・61) 법무부 장관의 공직생활, 즉 환로(宦路)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번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물은 첫 질문과 동일하다.
 
  우선 추 장관이 환해(宦海)의 풍파를 겪어온 과정을 몇 가지만 짚어보자. 대구 출신 여성 판사로 1995년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政界)에 입문, 이듬해 서울 광진구에서 출마해 딱 한 번 총선(2004년)에서 낙선한 것을 제외하고 5선 의원이 됐다. 집안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호남 출신인 남편과 결혼을 강행한 데서 보여주듯 주변 사람의 의견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매우 강하다. 이런 성품은 정계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이어져 때로는 바른 소리로, 때로는 튀는 언행으로 인해 ‘추다르크’라 불리기도 하고 ‘추키호테’로 폄하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무엇보다 정당을 옮겨 다니지 않고 오직 넓은 의미의 ‘민주당’ 한 곳만을 지킨 견결함이 있다. 이는 지금 우리 정치권의 누구도 따르지 못할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여성이긴 해도 분명 양(陽)의 자질, 굳셈[剛]이 두드러지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다만, 2004년 낙선(落選)의 악몽은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추 장관에게도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 것이다. 본인이 적극 나선 것은 아니지만 결국 노무현 탄핵에 앞장선 결과가 됐고, 그로 인해 낙선은 물론이고 정치적 존립 자체가 흔들렸던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추 장관의 정치 행보는 현재까지 정치권에서 드러난 바로는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을 노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이를 향해 묵묵히 가는 중에 ‘조국(曺國)사태’라는 돌발사건이 터졌고, 조국의 후임으로 검찰을 ‘옭아매는’ 다양한 조치를 내놓으며 한편에서는 ‘검찰개혁에 성공했다’는 극찬을 받고 한편에서는 ‘검찰을 망가뜨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문제는 그런 조치가 추미애 장관 본인의 의사라기보다는 청와대의 ‘하명(下命)’을 충실히 수행한 결과라는 데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여온 추 장관의 주관 강한 모습과 배치되며 동시에 그의 정치적 그림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이 파고들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역(周易)》은 분명 그 점에서도 도움을 줄 것이다. 대체로 대의명분과 자신의 신념을 따르던 추미애 장관이 이번에 보여준 모습은 많은 국민의 뜻을 저버린, 오직 대통령의 명(命)에 모든 것을 거는 행태였다. 이번에 필자는 그와 비슷한 역사적 행적을 보인 인물을 먼저 고르고 그에 해당하는 괘와 효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추 장관의 현재 행태와 앞으로의 전망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는 예전에 조국 전 장관의 명운을 본 방법이기도 하다.
 
 
  조선의 대표적 權奸 김안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후인 2004년 총선 당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3보1배’를 하며 당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조선DB
  필자는 이미 《주역》에 관한 풀이에서 김안로(金安老・1481~1537)의 위치를 정해놓았는데 그는 두 가지에 해당했다. 그에 앞서 김안로가 어떤 사람인지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김안로는 1506년(중종 1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전적(典籍)에 처음 임명된 뒤 수찬(修撰), 정언(正言), 부교리(副校理) 등 청환직(淸宦職·핵심 요직)을 역임했다.
 
  1511년 유운(柳雲)·이항(李恒)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했고, 직제학·부제학·대사간 등을 거쳤으며 일시 경주부윤으로 나갔다.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趙光祖) 일파가 몰락한 뒤 발탁되어 이조판서에 올랐다.
 
  아들 김희(金禧)가 효혜공주(孝惠公主)와 혼인해 중종의 부마(駙馬)가 되자, 이를 계기로 권력을 남용하다가 1524년 영의정 남곤(南袞), 심정(沈貞), 대사간 이항 등의 탄핵을 받고 경기도 풍덕(豊德)에 유배됐다. 남곤이 죽자 1530년 유배 중이면서도 대사헌 김근사(金謹思)와 대사간 권예(權輗)를 움직여 심정의 탄핵에 성공했다. 이듬해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서용(敍用)돼 도총관·예조판서·대제학을 역임했다. 그 뒤 이조판서를 거쳐 1534년 우의정이 됐으며, 이듬해 좌의정에 올랐다.
 
  1531년 다시 임용된 이후부터 동궁(東宮·훗날 인종)의 보호를 구실로 실권(實權)을 장악해 허항(許沆), 채무택(蔡無擇), 황사우(黃士佑) 등과 함께 정적(政敵)이나 뜻에 맞지 않는 자를 축출하는 옥사(獄事)를 여러 차례 일으켰다. 정광필(鄭光弼), 이언적(李彦迪), 나세찬(羅世纘), 이행(李荇), 최명창(崔命昌), 박소(朴紹) 등 많은 인물이 이들에 의해 유배 또는 사사(賜死)됐다. 경빈박씨(敬嬪朴氏)와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 등 종친도 죽임을 당했다. 또한 왕실의 외척인 윤원로(尹元老), 윤원형(尹元衡)도 실각당했다.
 
  하지만 김안로는 1537년 중종의 제2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의 폐위를 기도하다가 발각되어 중종의 밀령을 받은 윤안인(尹安仁)과 대사헌 양연(梁淵)에 의해 체포·유배되어 곧이어 사사됐다. 김안로는 허항, 채무택과 함께 정유삼흉(丁酉三凶)으로 일컬어진다. 조선의 대표적인 권간(權奸)이다.
 
  김안로는 청·장년기에는 비교적 올바른 길을 걸었음을 알 수 있다. 장원급제에 사림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청환직을 역임하며 사가독서까지 했다. 그러나 조광조 일파가 몰락하는 것을 보면서 김안로는 도리를 버리고 권신(權臣)의 길을 걷는다. 때로는 임금과 밀착하고 때로는 임금을 겁박하면서 권세를 넓혀가다가 결국에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된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김안로를 읽는 첫 번째 괘와 효
 
  김안로에 해당하는 첫 번째 괘와 효는 소축(小畜)괘(☴☰)의 밑에서 네 번째 음효다. 네 번째 음효를 보기에 앞서 소축괘의 전체 모습을 간략히 살펴야 한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역학(力學)관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대성괘 소축괘(☴☰)는 소성괘 손(巽)괘(☴)와 건(乾)괘(☰)가 위아래에 있어 만들어진 괘다. 설괘전(說卦傳)에 따르면 ‘바람[風]으로 흩어지게 하고’ ‘건(乾·하늘)으로 임금 노릇을 한다’고 했다. 강건한 건(乾)괘(☰)가 겸손한 손(巽)괘(☴)에 의해 저지당한[畜=止] 것으로 본다. 이는 곧 소음(小陰 ☴)이 태양(太陽 ☰)을 저지한 형국이다. 효 전체를 보면 하나뿐인 음효인 육사(六四)가 나머지 다섯 양효를 저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중에서 밑에서 네 번째 음효에 대해 공자는 ‘미더움이 있으면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윗사람과 뜻이 합치됐기 때문이다’라고 풀었다. 주공(周公)은 효사(爻辭)에서 ‘미더움이 있으면 피가 제거되고[血去] 두려움에서 벗어나니 허물이 없다[有孚 血去 惕出 无咎]’라고 했다. 먼저 효사에 대한 정이천(程伊川)의 풀이가 상세하다.
 
  “육사는 강함을 제지해 길들이는 때[畜時=小畜]에 임금과 가까운 자리에 있으면서 임금을 제지하고 길들이는 자다. 마음속에 미더움과 열렬함[孚誠]이 있으면 구오(九五)가 마음속으로 그를 믿고서 그의 저지를 따를 것이다. 소축괘의 이 유일한 음효는 여러 양효를 제지하고 길들이는 자이니 여러 양효의 뜻이 육사에 매여 있다. 육사가 만일 힘으로 저지하려고 한다면 하나의 부드러움[柔]이 여러 굳셈[剛]과 대적하게 되어 반드시 상해를 당할 것이요 오직 미더움과 열렬함을 다해 응하면 감동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피해를 멀리하고 위험과 두려움을 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피해를 면할 수 없다. 이것이 부드러움이 굳셈을 제지하고 길들이는 방도다. 위엄을 지닌 군주일지라도 미천한 신하가 임금의 욕심을 제지하고 길들일 수 있는 것은 미더움과 열렬함으로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하는 ‘有朋自遠方來’
 
  먼저 미더움과 열렬함을 다해 임금에게 응해 감동시키는 문제를 짚어보자. 이는 다름 아닌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다.
 
  기존 통상적인 번역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이다. 오역(誤譯)이다. 이 오역의 방점은 ‘먼 곳’에 찍혀 있다. 물론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면 반갑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내용이 《논어》의 첫머리 세 가지 중의 두 번째를 차지할 수는 없다.
 
  만일 이런 번역이 맞는다고 한다면 반문을 해보겠다. 가까이에서 자주 보는 친구가 찾아오면 즐겁지 않다는 말인가? 공자가 기껏 가까이에서 자주 보는 친구보다는 먼 곳에서 오랜만에 찾아온 벗에게 즐거운 마음을 가지라는, 《명심보감(明心寶鑑)》만도 못한 처세의 노하우를 던지고 또 《논어》의 편집자는 그 뜻을 받아 《논어》의 첫머리 세 가지 중 두 번째 자리에 두었겠는가? 당연히 아니다.
 
  이런 오역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실마리는 ‘붕(朋)’에 있다. 붕은 그냥 친구가 아니다. 뜻을 같이하는 친구[同志之友]가 붕이다.
 
  두 번째 실마리는 ‘원(遠)’이다. ‘멀다’는 뜻밖에 모르면 우리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여기서 원(遠)은 ‘멀다’가 아니라 ‘공정하다[公=明=正=大]’는 뜻이다. 《논어》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원(遠)이 무슨 뜻인지 살펴보기 바란다.
 
  자장이 ‘밝다’ 혹은 ‘밝음’[明]에 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점점 젖어드는 (동료에 대한) 참소와 살갗을 파고드는 (친지들의 애끓는) 하소연을 (단호히 끊어) 행해지지 않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밝다[明]고 말할 수 있다. (그 같은) 점점 젖어드는 (동료에 대한) 참소와 살갗을 파고드는 (친지들의 애끓는) 하소연을 (단호히 끊어) 행해지지 않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음과 어두움으로부터) 멀다[遠]고 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명(明)’과 ‘원(遠)’이 정확히 같은 뜻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요즘은 참소나 참언[譖=讒]이란 말보다는 중상모략·무고·헐뜯기 등이 더 자주 사용된다.
 
  공자의 이 말도 군주나 지도자를 향해 하는 말이다. 리더가 미리 알아서[先覺] 신하들 간에 실상과 동떨어진 중상모략이 행해지지 않게 하고 주변 사람들의 사사로운 청탁을 끊어낼 때, 그 리더십은 공명정대하다[明=遠]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붕(朋)’과 ‘원(遠)’을 풀면 거의 다 된 셈이다.
 
 
  김안로가 망한 원인
 
  신하들 중에 신뢰하며 뜻을 같이하는 신하가 있는데 먼 곳에, 즉 군주 주변의 사사로운 측근이나 근신(近臣)이나 후궁(後宮)들이 늘 해대는 익숙한 세계[近]에서 벗어난 곳에 가서 공정하고 비판적이고 때로는 귀에 거슬릴 수도 있는, 불편하지만 곧은 이야기들을 듣고서 바야흐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그런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임금에게 전할 수밖에 없다. 그랬을 때 군주로서는 불편한 정도를 넘어 불쾌하고 크게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한다면 아무리 신뢰를 공유하고 뜻을 같이한다 해도 신하 입장에서 말을 쉽게 꺼내기가 어렵다. 그것은 온전히 군주의 마음 자세에 달렸다. 그것이 바로 앞의 ‘불역열호(不亦說乎)’와 마찬가지로 ‘불역낙호(不亦樂乎)’, 즉 ‘진실로 즐겁지 않겠는가?’에 직결된다.
 
  겉으로만 즐거워해서도 신하는 입을 떼기 어렵다. 진실로[亦] 그러할 때라야 신하는 조심스럽게 군주의 허물들을 피하지 않고 전달할 수가 있다.
 
  눈 밝은 독자라면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다. 고대(古代) 중국으로부터 우리 조선시대까지 면면하게 이어진 언관(言官)의 간쟁(諫爭) 정신은 바로 이 같은 임금의 열린 마음이 전제될 때 제대로 발휘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음미해보기 바란다.
 
  “뜻을 같이하는 벗이 있어 (먼 곳에 갔다가) 먼 곳으로부터 바야흐로 돌아오니 진실로 즐겁지 않겠는가?”
 
  군주가 자신의 과오를 지적하는 신하에 대해 이처럼 뜻을 같이하는 벗과 같은 신하[友臣]로 대할 때라야 주변에 그런 신하들이 포진하여 군주의 눈 밝음[明]을 유지시켜줄 수 있다. 반면에 힘으로 저지하려고 한다면 하나의 부드러움[柔]이 여러 굳셈[剛]과 대적하게 되어 반드시 상해를 당하게 된다. 여러 ‘굳셈’이란 말할 필요도 없이 바른길을 따라가는 백성들의 마음[民心]이다. 조선 중종 때의 대표적인 권간 김안로는 바로 소축괘 육사(六四·밑에서 네 번째 음효)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다가 비명횡사했던 것이다.
 
 
  수 양제를 망친 우세기
 
수 양제.
  두 번째는 박(剝)괘(☶☷)의 밑에서 네 번째 음효다. 대성괘 박(剝)괘(☶☷)는 소성괘 간(艮)괘(☶)와 곤(坤)괘(☷)가 위아래에 있어 만들어진 괘다. 괘의 모양은 간(艮)이 위에 있고 곤(坤)이 아래에 있다. 정이천은 이에 대해 “산이란 땅 위에 높이 솟아 있어야 하는데 땅에 붙어 기대어[附] 있으니 산이 무너져내린 것[頹剝]”이라고 괘체(卦體)의 의미를 풀었다.
 
  박괘의 밑에서 네 번째 음효에 대해 공자는 “평상을 깎아 살갗에까지 이르렀다[剝牀以膚]는 것은 재앙에 매우 가깝다는 것이다”라고 풀었다. 이는 재앙이 곧 임금 자리인 오위(五位)에 거의 이르렀다는 뜻이다. 소인들의 발호로 인해 비교적 뛰어난 재주를 가진 임금이 자리에 있었음에도 순식간에 망한 나라로는 수(隋)나라가 대표적이다.
 
  〈내사시랑(內史侍郞) 우세기는 황제(수 양제)가 도적에 관한 소식을 듣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서 여러 장수와 군현(郡縣)에서 패배를 알리고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 있으면 표문에 있는 상황을 모두 완화하고 훼손하여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고 다만 이렇게 말했다.
 
  “쥐가 훔치고 개들이 도둑질을 하여 군(郡)과 현(縣)에서 잡아서 내쫓고 있으니 마땅히 다 없어질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개의치 마옵소서.”
 
  황제는 정말 그런 줄로 알고서 혹 실상을 전하는 자가 있으면 매질을 하여 거짓말을 했다고 여겼다. 이로 인해 도적들이 전국적으로 두루 퍼졌고 군현은 함락되어 없어졌으나 황제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양의신(楊義臣)이 황하 북쪽에 있는 도적 수십만 명을 깨트려 항복시키고 상황을 자세히 보고하자 황제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애초에 소식을 들은 바가 없는데 도적이 갑자기 이와 같아서 의신이 항복시킨 도적이 어찌 이리도 많단 말인가?”
 
  우세기가 대답했다.
 
  “소소한 도적들이 비록 많기는 하지만 아직 걱정할 만큼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양의신이 이겼고 그가 거느린 병사가 적지 않으며 오랫동안 경사(京師・수도) 밖에 있으니 이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황제가 말했다.
 
  “경의 말이 옳도다.”
 
  급히 양의신의 뒤를 쫓아가서 그의 군사들을 해산시키니 도적들은 이로 말미암아 다시 번성했다.
 
  수 양제는 이미 강도(江都·강소성 양주시)로 몽진(蒙塵)을 갔다. 이때 그의 아들 월왕 양동(楊侗)을 동도(東都·낙양) 유수로 삼았다. 이밀(李密·반란을 일으킨 신하)이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동도를 압박하자 수나라는 군대를 보내 막지만 번번이 패하여 달아났다. 이에 이밀은 격문을 돌려 수 양제의 열 가지 죄를 하나하나 열거했다.
 
  (궁지에 몰린) 월왕 양동은 태상승 원선달(元善達)을 (아버지 수 양제가 있는 강도로) 파견했는데 원선달은 적들이 있는 곳을 샛길로 가로질러 가서 상주(上奏)했다.
 
  “이밀이 무리 백만을 이끌고서 동도를 포위하고 압박하니 만일 폐하께서 빨리 돌아오신다면 저 까마귀떼 무리는 반드시 흩어질 것이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동도는 결국 함락되고 말 것입니다.”
 
  원선달이 흐느끼며 오열하자 황제는 용모를 고쳤다. 이때 우세기가 나서며 말했다.
 
  “월왕이 어리다고 해서 이런 무리가 월왕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원선달의 말이 사실이라면 원선달은 어떻게 해서 여기에 올 수 있었겠습니까?”
 
  황제는 마침내 발끈 화를 내며 말했다.
 
  “선달 같은 소인이 감히 나를 조정에서 욕보이는가?”
 
  이어 도적이 있는 곳을 거쳐서 동양(東陽·절강성 금화시)을 향하여 양식 운반을 재촉도록 하니 원선달은 결국 그곳을 지나다가 도적떼에게 피살됐다. 이후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아무도 감히 도적의 소식을 올리지 않았다.
 
  우세기는 용모가 침착하고 생각이 깊어 말하는 것이 대부분 황제의 뜻과 맞으니 황제가 특별히 가까이하며 아꼈으니, 조정 신하들 중에는 그에 비견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와 가까운 패거리[親黨]는 그에 의지해 관직을 팔고 옥사(獄事)를 팔아 뇌물이 공공연하게 행해지면서 그의 문은 마치 시장통과 같았다. 이로 말미암아 조정과 지방에 있는 (뜻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미워하고 원망했다.
 
  내사사인(內史舍人) 봉덕이(封德彝)가 우세기에게 아첨하여 붙었다. 우세기가 관리의 업무에 익숙지 않자 아무도 모르게 꾸며서 조서의 명령을 널리 행하고 황제의 뜻에 아첨하여 무조건 따랐으며, 신하들이 올린 표문 가운데 황제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모두 차단하여 아예 올리지 않았다. 심문하고 재판할 때는 법을 엄격하게 써서 심하게 죄를 물었으며, 논공행상을 할 때는 억누르고 깎아서 더욱 야박하게 했다. 그래서 그에 관한 우세기의 총애는 날로 융성해졌고, 수나라의 정치가 날로 무너져내린 것은 다 봉덕이의 소행이다.(註·훗날 우문화급 등이 반란을 일으켜 수 양제를 시해할 때 우세기와 배온도 함께 살해당했다.)〉
 
 
  ‘누군가가 무조건 자기 뜻에 맞춰주기를 바라는 욕심’
 
《대학연의》의 저자 진덕수.
  이에 대해 진덕수(眞德秀)는 《대학연의(大學衍義)》에서 이렇게 평했다.
 
  “수 양제는 무도하여 그 죄가 상(商)나라 주왕(紂王) 위에 뜬다면 배온, 배구, 우세기 등 여러 신하는 (상나라의) 비렴(飛廉)과 그의 아들 악래(惡來)(註·이 부자는 주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로 상나라가 망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들) 위를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고찰해보면 배온 등이 임금을 현혹한 방법은 애초부터 다른 기술이 아니라 오직 하나 황제의 뜻에 무조건 맞추는 것[逢迎]뿐이었습니다.
 
  (첫째) 황제가 음악을 심하게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온 천하의 산악과 백희들을 대거 경사에 집결시키도록 청하여 악공 3만명이 경사에 들어왔으니 이에 황제의 마음은 정(鄭)나라와 위(衛)나라의 음란한 음악과 연이은 질펀한 연회 등에 빠져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둘째) 황제가 원대한 계략을 좋아하고 큰 공을 세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서역의 여러 나라에 진귀한 보배들이 풍부하다고 말하고서는 그들을 초치하거나 이끌어 들일 것을 청하여 그들이 입조케 하니 이에 황제의 마음은 문득 진시황(秦始皇)이나 한 무제(漢武帝)의 정복사업을 그리워하게 되어 중국은 피폐해졌고, 날로 망하는 길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셋째) 황제가 설도형이 올린 송(頌)에 자신을 풍자한 뜻이 있다는 데에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즉각 죄를 지어내어 ‘근본적으로 그 정황의 의도를 보면 깊이 패역(悖逆)을 행하고 있다고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황제는 과연 그 말에 기뻐하면서 ‘공의 논의는 그의 패역함의 본래 마음을 정묘(精妙)하게 파악한 것이다’고 했으니, 이로써 능히 황제가 싫어하는 바를 제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 황제가 정사에 게으르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닷새에 한 번씩만 조회를 열라고 권했습니다. ‘고조를 본받지 마셔야 합니다. 헛되이 부지런히 하시면 몸만 고생입니다.’ 황제는 과연 그 말에 기뻐하면서 ‘곽연은 그 마음이 짐과 똑같도다’라고 했으니 이로써 능히 황제가 원하는 바에 무조건 맞춘 것입니다.
 
  (다섯째) 그 후에 사방에서 도적떼가 일어났을 때 황제의 뜻이 도적에 관한 소식을 듣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방에서 올라오는 보고서[表奏]를 무시하고 황제에게 올리지 않은 채 말하기를 ‘천하의 어느 곳에 그렇게 많은 도적이 있다는 말입니까’ 했고, 또 ‘쥐가 훔치고 개들이 도둑질을 하여 군과 현에서 잡아서 내쫓고 있으니 마땅히 다 없어질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황제는 그 말에 (그간 보고들에 대해) 의심을 품고서 소위에게 화를 내고 양의신을 의심했으며, 원선달에게 분노를 품어 결국 도적떼는 크게 번성하여 더 이상 통제를 할 수 없게 됐고 한두 해도 안 돼 수나라는 드디어 멸망했습니다. 원래 이들이 그렇게 했던 것은 그저 총애와 봉록을 좀 더 얻어보려는 것이었을 뿐 나랏일이 이미 망해가고 있다는 것은 몰랐을 것입니다. 이제 몸조차 가눌 곳도 없어졌는데 어디서 자신들의 총애와 봉록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여러 사람을 논했지만 그중에서도 우세기가 간사함의 우두머리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위징(魏徵)은 일찍이 말하기를 ‘양(梁)나라 무제는 주이(朱异)를 지나치게 믿다가 대성(臺城)의 모욕을 당하게 됐고, 수 양제는 우세기를 지나치게 믿다가 강도(江都)의 화(禍)를 당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무릇 이 두 임금이 그들을 지나치게 믿게 된 까닭은 누군가가 무조건 자기 뜻에 맞춰주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자기 뜻에 맞추려 하는 것이 끝에 가서 결국 화가 될 줄 누가 알겠습니까? 옛날에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고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말이 마음에 거슬리면 반드시 그것이 도리가 아닌지[非道]를 살펴보고, 어떤 말이 마음에 딱 들어맞거든 반드시 그것이 도리가 맞는지를 살펴보십시오.’
 
  대개 충성스러운 말과 지극한 논의[忠言至論]는 종종 임금의 마음을 거스르지만 이치로 따져보아 옳다면 마음에는 불편하더라도 마땅히 따라야 하는 것이고, 간사스러운 말과 사특한 언설[姦言邪說]은 종종 임금의 마음을 고분고분 따르지만 이치로 따져보아 어그러진 것이라면 뜻에는 맞더라도 마땅히 깊이 살펴야 합니다. 임금 된 자가 이것을 안다면 온갖 꾀를 써서 남의 마음을 알아내려는[揣摩] 간사함은 뜻을 얻지 못할 것이고, 끊임없이 임금의 작은 것까지도 살피려는[窺伺] 계책은 시행될 수 없을 것입니다.”
 
  조선 역사에서 이에 해당하는 인물로 중종 때의 권간(權奸) 김안로(金安老)를 들 수 있다. 물론 그에게 놀아난 중종의 책임 또한 면할 길이 없다.
 
 
  김안로를 읽는 세 번째 괘와 효
 
  진(晉)괘(☲☷)의 경우 밑에서 세 번째 효는 지난 호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이해하는 괘로 살펴본 바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김안로는 여기서도 진괘의 밑에서 네 번째 괘에 해당한다. 흔히 장관은 밑에서 세 번째고 네 번째는 재상에 해당하지만, 힘 있는 장관이나 판서의 경우 네 번째에 해당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뀐다는 의미의 역(易)이다.
 
  진괘의 밑에서 네 번째 양효에 대해 공자는 ‘쥐새끼와 같으니 반듯하면 위태롭다[鼫鼠貞厲]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풀었다. 구사(九四)의 처지는 양효로 음위에 있으니 자리가 바르지 않다. 공자는 일단 이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쥐새끼’라고 한 것은 어째서일까? 쥐란 사람을 두려워하고 꺼린다. 이때 ‘사람’이란 ‘군자’다. 바른 도리를 가진 사람을 꺼리고 두려워하니 매사 자리에 나아가 일을 행하는 것이 쥐새끼와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리를 계속 고집하면[貞=貞固]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결국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는 것은 그에 어울리는 다움[德]을 갖추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보니 군자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자신도 위태로워진다.
 
 
  추미애와 윤석열
 
윤석열 검찰총장.
  추미애 장관이 반드시 김안로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바른길을 걷던 선비가 어떤 계기로 딴 길을 걷게 될 경우의 개연성(蓋然性)을 짚어본 것이 이번 《주역》을 통한 진단의 핵심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주역》을 지배하는 원리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궁즉통(窮則通), 통즉궁(通則窮)’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소축괘 육사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즉 육사는 강함을 제지해 길들이는 때[畜時=小畜]에 임금과 가까운 자리에 있으면서 임금을 제지하고 길들이는 자라고 했다. 오직 마음속에 미더움과 열렬함[孚誠]이 있으면 구오가 마음속으로 그를 믿고서 그의 저지를 따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참된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박괘의 밑에서 네 번째 음효의 길을 가서는 안 된다. 이는 그저 소축괘 육사의 길을 따르지 않는 데서 벗어나 자신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 군주를 더욱 어두운 길로 끌고 가는 것이다.
 
  셋째,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관계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괘와 효는 진괘의 밑에서 네 번째 양효다. 이미 추미애 장관은 자신의 강함으로 불과 한 달 만에 윤석열 총장을 제압했다. 그러나 그것은 민심과는 동떨어진, 오직 권력자만을 의식한 조치였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현재 윤 총장은 명이괘(☷☲) 밑에서 세 번째 효에 처해 있다. “구삼(九三)은 밝음이 손상당하는 때에 남쪽으로 사냥을 가서 큰 괴수를 얻으니 빨리 바로잡아서는 안 된다[明夷于南狩 得其大首 不可疾貞].”
 
  전체적으로 위에서 거대한 음 세력이 누르고 있지만 꾸준히 위를 향해 올라가는 것이 양의 굳셈이다. 만약에 앞으로 또 도리가 아닌 것[非道]으로 명이괘 구삼에 있는 윤석열 총장을 누르려 할 경우 그 도리의 어긋남이 너무도 크게 돼 아마 서울시장, 대통령의 꿈은 깨끗이 접어야 하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 모든 게 추미애 장관 본인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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