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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보다 '어른'이 많은 세상을 기대하며 - 김세진 육군사관학교 67기(육군 대위 전역)

  • 관리자
  • 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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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보다 '어른'이 많은 세상을 기대하며

(사)경제사회연구원 뉴스레터 3호

경사연 소통광장 - 미래세대 발언대

뉴스레터 3호 수록 (2020년 3월) (클릭)



김세진 육군사관학교 67기(육군 대위 전역)




       2019년은 3.1운동 그리고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었다. 정부, 공공기관, 민간, 기업, 학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대대적으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정작 왜 3.1운동을 했어야 하는지, 왜 임시정부를 수립했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유명한 교수들이 모였다는 학술회의에서 조차도...


  왜 그랬던 걸까? 일본이란 단어만 들으면 일단 열 받으니까! 나는 삶의 다양한 길을 걷는 가운데, ‘분노는 분노의 대상보다 분노하는 그 스스로를 더 아프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한국인이라면 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손자병법의 한 문구다.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마주해도 위태롭지 않다”는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한국은 일본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걸까?


  현대 한국인들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메이지 천황을 기리는 도쿄의 메이지 신궁에 놀러가서, 명성황후(민비)를 살해한 검이 보관되어 있다는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에 놀러가서 건강, 행복, 부, 사랑, 입시/취업 성공 등을 기원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지닐 수 있는 최소한의 품격마저도 스스로 버리고 있는 촌극이다.


  란도셀 가방은 이토 히로부미 등이 들여와 일본 제국군대가 전쟁 당시 사용했던 배낭이다. 오늘날 한국의 초등학교 입학시즌이 되면, 아주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리는 가방이 되었다.


  현대 일본의 우익정치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책인 “신론”은 1825년에 쓰였다. 2017년이 되어서야 한국에 처음으로 번역출간됐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잘못을 반복하지 말자며 서애 류성룡 선생께서 썼던 “징비록”은 조선에서는 창고에 처박혔고 일본으로 넘어가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몇 십 년 뒤 조선은 청나라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야 했다. 한국은 일본의 경제를 '잃어버린 20년 혹은 30년'이라고 표현하고 때론 조롱한다. 그런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본은 세계 2~3위의 경제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누가 누구의 경제를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 한다. 


  일본은 해외에 가진 자산이 2018년 기준 4500조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다. 아무것도 안하고 숨만 쉬어도 매년 200여 조원이 입금되는 초대건물주인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해외자산 460여 조원, 주머니에 꽂히는 자금은 2000여 억 원이다. 한 나라의 지적역량과 기초과학기술 수준을 나타낼 때 자주 쓰이는 노벨상 수상, 일본은 과학분야에서만 25명이 수상하고, 한국은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1명 있을 뿐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전후부터 이미 조선과 일본의 발전격차와 지적유연성은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오랜 전쟁 속에서 일본의 각 지역영주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힘쓰다보니 자연스레 지역의 농업, 광산, 상공업 등이 발달하게 됐고 전 국토가 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때 오다 노부나가라는 인물은 “조총”을 활용해 활과 칼로만 싸워왔던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이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0여 년 전의 일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난 뒤 세워진 에도막부 시기에는 지방의 반란을 막기 위해 산킨고타이 제도라는 강력한 통제정책이 시행됐다. 지방 영주의 아들과 아내 각 1명을 에도에 인질로 살게 했고, 각 지방 영주는 6개월은 해당 지역에서 6개월은 에도에서 머물게 했다.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은 각 지역에서 부담하게 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통제정책들은 일본 전역의 교통과 통신망을 발달시켰다. 에도의 소식이 전국으로 퍼지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1주일 남짓이었다(같은 시기 조선은 한양에서 부산으로 소식을 전달하는데 약 한 달).


  에도 막부는 나랏문을 걸어잠갔지만, 조선통신사를 통해 조선과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나가사키를 네덜란드에 개방해 서구문물도 적극적으로 흡수했다. 전쟁이 없어져 칼을 휘두를 일이 없어지자 무사들은 붓과 책을 들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뜻있는 개인들은 학교를 설립해 인재를 양성했다. 또한 국제정세를 빠르게 접하는 동시에 출판문화도 발달하여, 지적인 유연성도 높아졌다. 이미 근대화를 위한 다양한 조건들이 갖춰지고 축적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서양에서 받아들인 총으로 전쟁의 개념을 바꾸고 있던 바로 그 때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바로 1575년(선조 8년), 관직임명권한(인사권)을 담당하는 직책인 “이조전랑”을 두고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다투고 있었다. 세상의 변화, 시대 흐름과는 완벽하게 동떨어진 채 그들만의 명분과 이념 다툼의 결과는 임진왜란이었다. 있는 밥그릇 가지려고 다투다가 모든 밥그릇이 다 깨져버린 꼴이다. 그로 인한 비극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2020년의 한국도 이런 모습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더 높은 직책과 더 많은 부를 얻고자 혈안이 된 ‘어른이’는 많지만, 청년/청소년들을 시대의 인재로 기르고 이끌기 위해 비전을 제시하고 모범을 보이는 ‘어른’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20대 후반의 나는 비록 가진 것도 없고 믿을 구석도 없지만 나름 결심했었다. 나는 ‘어른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자고...


  이제는 3.1운동을 기념하며 태극기를 흔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하자. 선조들께서는 지금의 우리가 또 만세운동과 독립운동 하기를 원하실까? 아니면, 다시는 만세운동도, 독립운동도 하는 일이 없도록 지피지기하고 실력을 쌓아가길 원하실까? 나는 내 자식으로 하여금 독립운동을 하기를 바랄 것인가? 


  독립투사들의 희생정신과 숭고한 헌신은 자유민주주의의 선물을 누리고 있는 후손으로써 당연히 기려야 마땅하다. 일제가 이 땅에서 저지른 만행들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들의 뜻을 진정으로 기리고 아직도 이어지는 아픔들을 제대로 보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유하는 수준과 시선의 높이를 달리해야 한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다. 왜 식민 당했어야 하는지, 왜 만세운동을 해야 했는지, ‘일본이 나쁜 놈이니까!’, ‘그때 못 된 위정자들이 나라 팔아먹었으니까!’라는 분노의 수준으로만 대처한다면, 이 땅은 또 다시 누군가의 식민지가 될 확률만 높아질 뿐이다.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림과 머무름'이 아니라 '도전과 초월'에 있다. 그 시작은 바로 ‘냉정하고 철저한 지피지기’다. 모르면 죽는다. 어설프게 알면 당한다. 제대로 알아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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