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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와 역사로 주역을 읽다以事讀易] <7> 코로나 사태 만난 정세균 총리, “호랑이 꼬리를 밟았으나 두려워하면 끝내는 길하다”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 관리자
  • 2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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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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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밟아가는 것을 보아 상서로울지를 고찰하되 그 주선하는 바가 잘 갖춰지면 으뜸으로 길하다”(周公)
⊙ “견결하게 밟아가니[夬履] 반듯해도 위태롭다는 것은 자리가 딱[正] 그러하기 때문이다”(공자)
⊙ “禮란 마땅함을 따르고, 사신은 그 나라의 풍속을 따른다”(禮記)

이한우
1961년생.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철학과 석사,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박사 과정 수료 / 前 《조선일보》 문화부장, 단국대 인문아카데미 주임교수 역임
사진=뉴시스
  때는 사람을 기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평시에야 일의 이치[事理]가 크게 작용하지만 비상시에는 일의 형세[事勢]가 일의 이치를 제압한다. 비상한 때에는 비상한 조치를 써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20년 벽두부터 들이닥친 ‘신종코로나바이러스19’의 바람이 거세다. 모든 뉴스를 삼켜버렸다. 전쟁 때 전투는 전선에서만 이뤄지니 그나마 예측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은 언제 어디서 전염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는 상황이다.
 
  《주역(周易)》은 우환의식(憂患意識)을 깔고 있다고 공자(孔子)는 이미 이야기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주역》은 개인의 복(福)을 구하는 사상이 아니라 공동체의 우환을 피하고 나아가 개인의 우환을 피하는 데 초점을 맞춘 책이라는 말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서 공자는 《주역》과 관련해 이런 말을 남겼다.
 
  “만일 나에게 몇 년의 수명이 더 주어진다면 쉰 살까지 주역을 공부해 큰 허물이 없게 될 텐데.”
 
  공자는 말은 허물을 짓고 행동은 후회를 낳는다고 했다. 물론 그릇된 말과 잘못된 행동을 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주역》은 허물을 피하는 기술이다. 비상한 때에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구설수에 오른 정세균 총리
 
  지난 1월 14일, 3권분립 파괴 논란을 묵살하고 국회의장 출신 정세균(丁世均)씨가 총리에 취임했다. 이미 전임 이낙연(李洛淵) 전 총리가 총리에 재임하는 것만으로 ‘대권 후보’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같은 호남 출신의 베테랑 정치인 정세균의 총리 취임 또한 여권의 대권 구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퍼즐을 풀기도 전에 나라 전체에 몰려온 중국발(發) 코로나 사태가 정 총리의 입지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한마디로 엄중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튀지 않는 행보에 합리적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진 정세균 총리는, 6선(選) 의원에 두 차례 종로구에서 당선되고 조용한 처신 때문인지 크게 뉴스의 초점이 된 적은 드물다. 총리 취임 후 한 달 만인 지난 2월 종로의 한 상가를 방문해 상인과 대화하던 중 “손님이 적어 편하시겠네”라고 발언해 구설(口舌)에 오른 것은 정 총리로서 매우 예외적 상황이라 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정치는 조용했다. 바꿔 말하면 재미가 없는 정치인이라는 말도 될 것이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이번 정세균 총리의 등장은 문재인 정권 전체 문맥에서는 새로운 대권 후보군 형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대략 총선을 앞두고 호남표 다지기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대신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청와대발(發), 여권발, 행정부발 각종 악재(惡材)를 처리해야 하는 ‘소방수’ 역할이 정 총리에게 주어진 과제였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전염까지 터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 총리의 전반적인 정치적 명운을 보는 문제는 제쳐두고 당장 코로나 사태에 정 총리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그나마 큰 허물이 없을지 짚어보는 데 초점을 두려 한다. 일반적으로는 괘(卦)를 통해 상황을 점검하고 효(爻)를 찾아 들어가는 방식을 취하지만 지금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곧장 효로 들어가 해결책을 찾아보는 방법 또한 가능하다.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천택리(天澤履)괘(☰☱)에 눈길이 간 것은 이 괘와 효에는 재앙을 상징하는 ‘호랑이’가 세 차례나 등장하기 때문이다.
 
  먼저 괘 전체를 풀이하는 이괘(履卦)의 효사(爻辭)는 다음과 같다.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不咥] 형통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했다는 이 말을 공자의 도움을 받아 풀어보자.
 
  “이괘(履卦)는 부드러움[柔]이 굳셈[剛]에 밟힌 것이니 건(乾)에 기뻐하면서 호응하는 것이다[說而應]. 이 때문에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아서 형통한 것이다. 굳세[剛]고 중정(中正)함으로 제왕의 자리를 밟았으니[履帝位] 하자가 없으면[不疚] 훤히 빛난다[光明].”
 
  부드러움이란 아래의 태(兌)괘(☱)이고 굳셈이란 위의 건(乾)괘(☰)다. 부드러움이 굳셈에 밟힌 형상이니 이는 기꺼이 음(陰)이 아래에서 양(陽)을 받드는 모양이다. 아래서 이미 사리가 마땅하니[事宜] 형통할 수밖에 없다.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는 것은 오히려 이처럼 사리가 마땅할 경우 호랑이 꼬리를 물어도 그 사람을 물지 않을 만큼 형통함을 강조하기 위해 끌어들인 장치일 뿐이다. 따라서 이 장치에 중점을 두어 유이강(柔履剛)을 단순히 ‘부드러움이 굳셈을 밟는다’라고 반대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사리에 맞게 일을 해나갈 경우 그만큼 크게 형통하다는 것이다.
 
  ‘굳세[剛]고 중정(中正)함으로 제왕의 자리를 밟았다[履帝位]’는 것은 구오(九五)의 다움[德]과 위치를 풀어낸 것이다. 따라서 특별한 하자나 병통[疚=瑕疵]만 없다면 다움이 성대해 모든 것이 훤히 잘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 병통이란 정이천(程伊川)에 따르면 ‘견결하게 밟아가는 것[夬履]’이다. 지나치게 일을 통쾌하게 처리하려 할 경우에는 오히려 설사 반듯해도 일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집스럽게 자기 생각만 견지하는 것 또한 이에 해당한다.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하면…”
 
  이런 조건하에서 정세균 총리가 놓이게 되는 상황, 즉 밑에서 네 번째 양효인 구사(九四)를 주공(周公)은 어떻게 해석했고, 또 공자는 그것을 어떻게 풀이했는지 살펴보자. 먼저 주공은 이렇게 말했다.
 
  “구사(九四)는 호랑이 꼬리를 밟았으나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하면[愬愬] 끝내는 길하다.”
 
  이에 대해 공자는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하면 끝내는 길하다[愬愬終吉·색색종길]는 것은 (일을) 행하려는 데 뜻이 있다는 말’이라고 풀었다. 즉 주공의 효사(爻辭) 중에서 ‘호랑이 꼬리를 밟았으나[履虎尾·이호미]’ 부분은 생략하고 뒷부분만 풀어낸 것이다.
 
  사실 효의 몸체와 자리만 놓고 보면 대단히 흉하다. 양효로서 음위에 있으니 자리가 바르지 못하고 비록 아래로는 유비(有比)관계이나 바로 위의 임금 자리에 있는 구오(九五)와는 무비(無比)에다 아래의 초구와 같은 양효여서 무응(無應)이다. 이런 제반 부정적 요소들이 한데 모여 ‘호랑이 꼬리를 밟았다[履虎尾]’는 풀이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냥 머물지 말고[不處] 일의 이치를 밟아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일을 행한다면[行=履] 당장은 아니어도 끝에 가서는 길할 수 있다는 조건부 긍정일 뿐이다.
 
 
  선조와 신하들의 대화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2월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범정부대책회의에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1596년(선조 29년) 1월17일자 《선조실록(宣祖實錄)》은 바로 이 부분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전해준다.
 
  〈상이 말했다.
 
  “여기에 ‘호랑이 꼬리를 밟았다[履虎尾]’라고 이른 것은 위태함을 말한 것인가?”
 
  영사(領事) 유성룡(柳成龍)이 아뢰어 말했다.
 
  “처음에는 비록 몹시 위태한 것 같으나 끝내 피해를 보는 데는 이르지 않는 것이라 마치 한 고조(漢高祖)의 홍문연(鴻門宴)-유방(劉邦)이 항우(項羽)와 홍문(鴻門)에서 회합했을 때 범증(范增)이 항장(項莊)에게 시켜 유방을 죽이려 했는데 항백(項伯)과 번쾌(樊噲)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같은 경우가 곧 그것입니다.”
 
  시독관(侍讀官) 정경세(鄭經世)가 아뢰어 말했다.
 
  “만약 이 호랑이의 꼬리를 밟는 상(象)을 만났을 경우 공구수성(恐懼修省)의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능히 화(禍)를 바꾸어 복(福)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하물며 오늘날의 형세는 호랑이의 꼬리를 밟는 것보다 더한 때이겠습니까.”
 
  성룡이 아뢰어 말했다.
 
  “한갓 일신만 수성(修省)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일을 시행할 때 공구(恐懼)의 마음을 다하여 군신(君臣) 상하가 함께 협력하며 감히 조금도 게을리 아니하여 백폐(百廢)를 소생케 하는 것이 모두 수성의 도리인 것입니다. 옛사람의 말에 ‘지금 국가가 한가하니 이때에 그 정형(政刑)을 밝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지금처럼 위급한 때이겠습니까. 지금 중외의 인심이 모두 해이해져서 죽음 속에서 삶을 구하여 보수(保守)할 계책을 생각하지 않으니, 적이 만약 재침(再侵)하게 되면 반드시 무너지고 말 형편입니다.”〉
 
 
  “견결하게 밟아가니 반듯해도 위태롭다”
 
  이괘의 밑에서 다섯 번째 양효, 즉 군주의 효에 주공은 이렇게 해석했다.
 
  “견결하게 밟아가니 반듯해도 위태롭다.”
 
  이에 대해 공자는 ‘견결하게 밟아가니[夬履] 반듯해도 위태롭다는 것은 자리가 딱[正] 그러하기 때문이다’라고 풀었다.
 
  먼저 주공(周公)의 효사(爻辭) 부분을 보자. 이괘의 구오(九五)는 중정(中正)을 얻었는데 왜 이처럼 ‘반듯해도 위태롭다’라는 부정적 판단을 내린 것일까? 그 실마리는 쾌(夬)에 있다. 쾌는 지나치게 강하게 결단하는 것[剛決]이다. 이런 부정적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은 구오는 아래위로 무비(無比·음양의 조화가 없음)인데다가 구이(九二)와도 같은 양효로 무응(無應·둘 다 양효)이다. 전형적으로 홀로 똑똑함을 내세우는 임금의 모습이다. 공자의 ‘자리가 딱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독불장군 임금의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지난 2년여를 통해 문재인(文在仁)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은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다. 일방적인 탈원전(脫原電)은 신호탄에 불과했고, 맹목적인 친북(親北)·친중(親中) 성향은 중간층 지지자들을 등 돌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토론은 전혀 없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순간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매도해왔다.
 
  이미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남북관계는 사실상 파탄 상태다. 미국이나 일본과의 불협화음은 커져가고 있다. 여기에 다시 중국에 굴욕적 외교를 고집하면서 보수 진영의 큰 분노를 사고 있다. 이런 부분 어느 하나에도 정세균 총리가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인다.
 
 
  위징의 諫言
 
唐 太宗 때의 名臣 위징.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은 이괘의 맨 위에 있는 양효, 즉 상구가 담고 있다. 먼저 주공의 해석이다.
 
  “밟아가는 것을 보아 상서로울지를 고찰하되 그 주선하는 바가 잘 갖춰지면 으뜸으로 길하다.”
 
  이괘의 맨 위에 있는 양효에 대해 공자는 ‘으뜸으로 길한 것[元吉]이 맨 위에 있으니 크게 좋은 일이 있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일단 주공의 효사(爻辭) 중에서 앞부분, 즉 ‘밟아가는 것을 보아 상서로울지를 고찰하되 그 주선하는 바가 잘 갖춰지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시작을 삼가고 이어서 일의 진행을 빈틈없이 잘 처리해서[周旋] 그 끝을 잘 마쳤을 경우에는 크게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정이천은 이를 짧게 ‘사람이 일을 행함에 있어 좋은 끝마침이 있음[有終]을 귀하게 여긴다’고 풀었다.
 
  당(唐)나라 때 명신(名臣) 위징(魏徵)이 당 태종에게 올린 ‘간태종십사소(諫太宗十思疏)’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태종에게 10가지 반드시 명심해야 할 내용을 간언하는 상소라는 뜻이다. 그중에 끝을 잘 마치는 것[敬終]과 관련된 부분이다.
 
  “처음에 시작을 잘 하는 사람은 많지만 능히 끝을 잘 마치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나태하고 게을러질지 두려울 때는 반드시 일의 시작을 신중히 하고 일의 끝을 잘 삼가야 한다[愼始而敬終]는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시작도 잘 하기 어렵지만 잘 진행하기도 힘들고 잘 마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말이다.
 
 
  禮란 무엇인가?
 
  위기 상황에서는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결정 하나, 말 하나, 행동 하나가 방향을 가른다. 《주역》에는 문왕이나 주공의 해석에 대한 공자의 풀이 이외에 순전히 공자 자신이 독자적으로 괘(卦)에서 교훈을 추출해내는 항목이 있다. ‘리더십 이론’ 혹은 ‘제왕학(帝王學)’으로서 공자의 《주역》 풀이가 독창적으로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것을 ‘대상전(大象傳)’이라고 한다. 대상은 괘, 소상은 효다. 그렇다면 이괘(履卦)에 대한 공자의 직접적인 풀이는 무엇일까? 국난을 함께 극복하는 차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위로 하늘이 있고 아래에 연못이 있는 것이 이(履)(가 드러난 모습)이니 군자(君子)는 그것을 갖고서[以] 위와 아래를 분별해 백성들의 뜻을 안정시킨다[上天下澤履 君子以 辨上下 定民志].”
 
  이(履)는 곧 예(禮)다. 그런데 우리는 전통적으로 ‘위와 아래를 분별한다[辨上下]’를 지나치게 신분제도에만 국한해서 풀어왔다. 그러나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을 정밀하게 읽어보면 이는 지나치게 협소한 해석이다. 먼저 예(禮)를 어떻게 말하는지 잘 살펴보자.
 
  “예(禮)란 마땅함을 따르고[從宜] 사신은 그 나라의 풍속을 따른다[從容]. 무릇 예라는 것은 친근하고 소원한 것[親疏]을 정하는 것이고 미심쩍고 의심스러운 것[嫌疑]을 결단하는 것이고 같고 다른 것[同異]을 구별하는 것이고 옳고 그른 것[是非]을 밝히는 것이다.
 
  예는 쓸데없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쓸데없이 말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다[不辭費].
 
  예는 절도를 뛰어넘지 않으며 남을 침범해 업신여기지 않으며 함부로 남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닦고 자기가 한 말을 실천하는 것을 좋은 행동[善行]이라 하고 닦은 것을 행하고 도리를 말하는 것이 예의 바탕[質]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예(禮)의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의 이치[事理]로서 예(禮)가 대략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단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래야만 지나치게 상하윤리(上下倫理)로 좁혀서 생각하는 예(禮)의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禮란 마땅함을 따른다”
 
  먼저 “예(禮)란 마땅함을 따른다[從宜]”고 했다. 마땅함이란 당연히 일의 마땅함[事宜=事理]이다. 이를 가장 쉽고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사례가 바로 《논어(論語)》 계씨(季氏)편에 나오는 구사(九思)다.
 
  “군자는 아홉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볼 때는 밝음을 먼저 생각하고[視思明] 들을 때는 귀 밝음을 먼저 생각하고[聽思聰] 얼굴빛은 온화함을 먼저 생각하며[色思溫] 몸가짐을 할 때는 공손함을 먼저 생각하며[貌思恭] 말할 때는 진실함을 먼저 생각하며[言思忠] 일을 할 때는 삼감을 먼저 생각하며[事思敬] 의심스러울 때는 물음을 먼저 생각하며[疑思問] 분할 때는 어려움을 먼저 생각하며[忿思難] 얻음을 보면 마땅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見得思義].”
 
  여기서 생각하라[思]는 바로 마땅함을 생각하는 뜻이다. 즉 어떤 일을 볼 때는 밝게 처리하는 것이 마땅함이다. 어떤 일을 아랫사람에게서 들을 때는 귀 밝게 듣는 것이 마땅함이다. 그 나머지 또한 마찬가지다.
 
  “사신은 그 나라의 풍속을 따른다[從容]”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어짊[仁=愛人]이다. 이 또한 마땅함이다.
 
  “예라는 것은 친근하고 소원한 것[親疏]을 정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그 관계의 마땅함에 맞게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맹자(孟子)》 진심장구(盡心章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이 그것이다.
 
  “군자(君子)가 외부의 사물이나 일[物=事]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아껴주기만[愛]하지 사랑하지는[仁] 않는다. 백성(혹은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는 사랑하기만 하지 내 몸과 같이 여기지는[親] 않는다(결국 군자가 내 몸과 같이 여기는 것은 부모형제와 친족이다). 부모형제와 친족을 내 몸과 같이 여긴[親親] 후라야 백성을 사랑할 수 있고 백성을 사랑한 후라야 사물을 아껴줄 수 있다.”
 
  이어 “미심쩍고 의심스러운 것[嫌疑]을 결단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일을 하다 보면 미심쩍거나 의심스러운 사안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때 그것을 사리에 맞게 결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예(禮)다. “옳고 그른 것[是非]을밝히는 것” 또한 마땅함에 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쓸데없이 말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다”
 
  “예는 쓸데없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논어》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구절의 도움을 받아야 정확히 알 수 있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니, 기쁘게 하기를 도리로써 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부리면서도 그 그릇에 맞게 부린다.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쉬우니, 기쁘게 하기를 비록 도리로써 하지 않아도 기뻐하고, 사람을 부리면서도 능력이 완비되기를 요구한다.”
 
  “쓸데없이 말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 또한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 나오는 다음 구절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더불어 말할 만한 사람인데도 그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잃는 것[失人]이요, 더불어 말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한다면 말을 잃는 것[失言]이니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사람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
 
  정세균 총리 앞에는 아주 어려운 길이 펼쳐져 있는 듯하다. 그런 경우 해법은 단 하나, 호랑이 꼬리를 밟은 심정으로 백성을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하며 오직 길을 따라서 가는 것만이 《주역》이 제시하는 해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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