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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스트] 부동산 정책의 반면교사들-권남훈 경제센터장,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관리자
  • 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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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2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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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지를 전달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례를 드는 것이다. 정부가 포퓰리즘적 정책만 추구하면 일어나는 문제들을 말하기 위해 베네수엘라가 겪은 비극을 드는 식이다. 물론 그런 얘기를 들으면 한국과 비교가 불가능한 나라 얘기를 하냐며 모욕감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이나 북유럽과 똑같지 않아도 그들의 좋은 정책을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잘못된 정책의 결과를 알기 위해 비슷한 수준의 나라들만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뜻에서 쿠바와 루마니아의 부동산정책 사례를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1959년 사회주의 혁명 이전의 쿠바는 자기 집 소유 비율이 낮은 나라였다. 혁명정부는 집은 `사는(live in) 곳`이지 `돈 버는 수단(live from)`이 아니라는 원칙을 세웠다. 임차인을 내보낼 수 없게 하고 임대료는 절반으로 낮췄다. 매매 시 허가를 받게 해 부동산 거래를 사실상 금지하고, 주택담보대출을 없애 `투기`를 근절했다. 대신 임차인이 임대료를 10여 년간 납부하면 살던 집을 자기 소유가 되도록 했다. 다주택을 소유한 임대인들은 일정 대가를 받고 집을 국가에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쿠바가 달성하려 한 것은 누구나 자기 집 한 채씩 가지고 사는 나라였다. 그 꿈은 성공한 듯 보였다. 자가 보유율은 85%에 이르렀고, 좌파 지식인들의 찬사도 받았다. 하지만 쿠바의 주거환경은 곪아 들어갔다. 집의 매매가 불가능해서 이사를 가려면 서로 맞교환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주 토요일 아침 수도 아바나의 거리에는 맞교환 희망 사항을 적은 종이를 든 이들이 이산가족처럼 몰려들었다. 원하는 집에 가려면 몇 차례씩 연쇄 교환할 물건을 미리 찾아야 했다. 당연히 암시장과 감시당국에 주는 뇌물도 등장했다.

더 큰 문제는 민간 주택 공급이 끊겼다는 것이다. 신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정부는 공공주택을 짓고, 마이크로 여단(micro-brigade)으로 불린 마을 공동체 집 짓기 운동도 펼쳤지만 공급은 턱없이 모자랐다. 더구나 이렇게 지은 집들은 품질이 조악해서 암시장에서는 혁명 이전의 낡은 집들이 `자본주의 건축`이라는 명칭으로 더 비싸게 거래됐다. 현재도 전체 건물의 40%가 부실한 상태여서 아바나 옛 시가지의 모습은 폭격을 당한 시리아 거리를 방불케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방이 두 개인 아파트에 할머니와 딸들, 배우자들과 손자·손녀까지 들어차 사는 모습이 높은 자가 보유율을 자랑하는 쿠바의 흔한 풍경이다.

루마니아의 사례도 흥미롭다. 과거 사회주의 정부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외곽에 비좁은 공공아파트를 대거 건설했다. 자유화 이후 정부는 이를 기존 거주자에게 싸게 불하했는데 그 결과 루마니아의 자가 보유율은 96.6%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주거 수요와 상관없이 지어진 주택들로 인해 빈집 비율이 16%에 달하고, 소유권이 잘게 쪼개진 낡은 아파트들은 재건축·재개발이 거의 어렵다.

소형 주택 구입에만 적용되는 정부 지원은 자금의 흐름을 왜곡했다. 임대수익에 물리는 높은 세금 때문에 임대시장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세계은행에 의하면 루마니아는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유럽에서 주거환경이 가장 열악한 나라가 됐다.

한국에서 이런 일들까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한 여당 의원은 1가구 1주택 보유를 원칙으로 삼는 법안을 발의하며 `집은 자산 증식이나 투기 수단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계속되는 정책 실패에도 정부의 `불로소득` 환수 의지는 여전하고, 유력 대선 주자는 투기 규제를 더 강화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권남훈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경제센터장]



출처: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1/01/17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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